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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드라마를 보고 양규장군에 빠진 리뷰

by 볼트마스터 2023. 12. 30.

 

고려거란전쟁의 양규장군

고려의 숨은 공신 양규 장군

고려와 거란의 전쟁은 총 1차, 2차, 3차로 나누어집니다. 

우리가 알아볼 양규 장군은 그중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의 인물입니다. 

 

올가을, 겨울 안방극장을 흥미롭게 하는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을 보다가

지나간 고려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중에서 저는 양규 장군에게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제1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말로 담판을 지었던 

서희 장군과 제3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승리를 이끈 강감찬 장군이 계십니다. (사실 이 두 분 역시 문과 출신이지요)

 

그렇다면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의 영웅이었던 양규 장군에 대해 알아봅시다.

 

어쩌면 드라마가 아니었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그 시대의 진정한 영웅!

양규 장군은 서희 장군과 강감찬 장군 두 분과는 다르게 유일한 고려의 무관 출신입니다.

그는 흥화 진의 당시 도순검사로 있던 강조가 도성으로 떠나고 뒤를 이어 흥화진을 끝까지 지킨 장수였습니다.

 

이것뿐이 아닙니다.

거란의 군사들이 흥화진을 격파하지 못하고 강조 장군이 지키고 있던 통주로 가서 고려군을 장악해 버린  

양규 장군에게 마치 강조가 항복하자는 거짓 서신을 보냈으나 양규 장군은 나는 고려의 왕인 현종의 뜻만을 받들 것이며 

강조 장군의 명령은 따를 수 없다며 불복하였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양규 장군의 마력에 빠진 것도 사실입니다.

양규 장군은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고려 백성 삼만 명을 구한 그 시대의 영웅 중 영웅이었습니다.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의 양규 장군 스토리

 

제2차 고려 거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양규 장군의 고려의 시대적 배경을 보면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봤던 천추태후,그녀와 불륜에 빠졌었던 김치양, 그녀의 아들인 목종의 죽음으로

새로운 왕으로 현종이 보위를 잇게 되면서부터입니다.

 

당시 요나라를 건국한 야율아보기(성종)는 호시탐탐 고려를 어떻게 하면 침공 할 수 있을까를 노리며

때를 기다렸었던인물입니다. 그런 그에게서 목종의 죽음은 전쟁을 일으키기에 아주 좋은 명분이 되었겠지요.

드라마를 시청하셨던 분들도 아마 명분이란 단어를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명분이 없어서 언제든 침략을 하고 싶었던 거란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명분은 없었을 겁니다.

김치양과 천추태후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보위에 오르게 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쓰고 있었는데요.

그걸 알게 된 강조가(당시 흥화진 도순검사) 군사들을 도성으로 데려가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내버린 게 발단이 되었습니다.

 

틈틈이 때를 기다리며 어떻게 하든 고려를 침략하고 싶었던 야율아보기에게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기회 중에 기회였지요.

이것을 명분으로 삼아 천하의 역적인 강조를 처형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이 전쟁의 서막이 시작됩니다.

사실 진짜 명분은 고려와 송나라의 화친으로 인해서 불안했던 거란 왕이 더 이상의 교류를 못하게 만들고

제1차 고려 거란 전쟁 때 서희에게 말로 빼앗긴 강동 6주를 다시 찾으려고 한 이유였습니다.

 

 

마침내, 거란의 왕 요율아 보기와 그의 가장 가까웠던 신하인 소배압은 이 사건을 계기로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의 땅압록강의 문턱을 넘고야 맙니다.

거란의 군대는 제일 먼저 양규 장군이 지키고 있는 흥화진을 공격하기로 합니다.

 

사실 양규 장군의 흥화진 전투에 관한 실록은 자세하게 나와 있지 않으나

40만 대군을 이끌고 온 거란의 군사와 흥화진 성에 있던 군사들은 몇만 대군이 아닌 

몇천 명도 안 되는 군사가 다였다고 합니다.

양규 장군과 그의 수하들은 성안에서 절대 성 밖으로 나오지 나오지 않은 방어 태세의 전략을 세웠습니다.

몇 날 며칠 밤낮으로 싸워내며 간신히 버티며 결국 거란군들은 흥화진을 뒤로한 채 

강조장군이 있는 통주로 노선을 바꿉니다.

 

강조 장군이 거란군에게 처형당하고 고려 왕은 도성을 버리고 나주로 몽진을 가게 되었을 때도 

일천여 명의 군사들을 끌고거란군의 보급처인 곽주로 향해 남아있는 거란군사들을 물리치고 성을 다시 다시 찾게 됩니다.

 

2년여 동안 전쟁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거란군이 1011년 봄에 철수하게 되는데

그 길목에서 거란군들을 기다렸다가 기습공격을 합니다. 거란군 이천여 명을 죽이고

거란의 포로로 끌려가게 됐었던 백성들 이천여 명을 구했습니다.

 

계속되는 양규 장군의 기습은 거란 군사들 이천오백 명을 죽이고 포백성 천 명 여명 구합니다. 

여러 참에서도 거란 군사들 천여 명을 죽이고 포로로 있었던 고려 백성 천여 명을 구했고

끝까지 거란 군사들을 쫓아가 곽주로 향합니다. 거란군을 급습해서 모두 죽이고 고려 백성들을 통주로 피신하게 했습니다. 

기나긴 전쟁의 여파와 목숨을 잃고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거란의 뒤를 놓아주지 않았던 

양규 장군은 끝내 이 전투에서 김수흥과 함께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현종은 전쟁에서 승리한 그에게 공부 상 서로 추증했고

그의 부인에게는 교서와 곡식 백석을 하사했습니다. 또한 그의 아들인 양대춘에게는 교서랑이라는 벼슬을 주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문종 때 역시도 곡식 백석이 하사되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에 을지문덕 장군, 조선에 이순신이라면 고려에는 양규 장군

 

사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역사에서 유명한 장군들은 참 많습니다. 

고려 거란 전쟁을 1차 2차 3차로 나눠보면 1차는 서희 장군 2차는 양규 장군 3차는 강감찬 장군이겠지요.

 

지나왔던 과거의 드라마나 영화를 돌이켜보면 김유신 장군, 계백장군, 을지문덕 장군들은 많이 등장하는데 양규 장군은

등장을 했었다 해도 기억에 스치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

 

천추태후라는 드라마를 시청했을 때도 양규 장군의 스토리는 많이 등장하지 않았던 걸로 보아 하면 이번 고려 거란 전쟁에서의 양규 장군은 드디어 우리들의 마음에 각 이 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양규 장군의 대범함과 뛰어난 지략에 빠져 지나온 역사를 찾아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최근 들어 퓨전 사극이 많아지면서 흥미는 높아져도 쉽게 빠져드는 사극이 없었는데 이번 정통 대하사극으로

제가 놓칠 뻔했던 고려 시대의 영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